자료구조와 알고리즘 공부
제가 생각건대, 교육적인 목적에서는 자료구조나 알고리즘을 처음 공부할 때 우선은 특정 언어로 구현된 것을 보지 않는 것이 좋을 때가 많습니다. 대신 말로 된 설명이나 의사코드(pseudo-code) 등으로 그 개념까지만 이해하는 것이죠. 그 아이디어를 절차형(C, 어셈블리어)이나 함수형(LISP, Scheme, Haskell), 객체지향(자바, 스몰토크) 언어 등으로 직접 구현해 보는 겁니다. 그 다음에는 다른 사람이나 다른 책의 코드와 비교합니다. 이 경험을 애초에 박탈당한 사람은 귀중한 배움과 깨달음의 기회를 잃은 셈입니다.
만약 여러 사람이 함께 공부한다면 각자 동일한 아이디어를 같은 언어로 혹은 다른 언어로 어떻게 다르게 표현했는지를 서로 비교해 보면 배우는 것이 무척 많습니다.
우리가 자료구조나 알고리즘을 공부하는 이유는, 특정 '실세계의 문제'를 어떠한 '수학적 아이디어'로 매핑시켜 해결할 수 있는지, 그것이 효율적인지, 또 이를 컴퓨터에 어떻게 효율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지 따지고, 그것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이 과정에 있어 실세계의 문제를 수학 문제로, 그리고 수학적 개념을 프로그래밍 언어로 효율적으로 표현해내는 것은 아주 중요한 능력이 됩니다.
알고리즘 공부에서 중요한 것
개별 알고리즘의 목록을 이해, 암기하며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다음 네 가지입니다.
①알고리즘을 스스로 생각해낼 수 있는 능력
②다른 알고리즘과 효율을 비교할 수 있는 능력
③알고리즘을 컴퓨터와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해낼 수 있는 능력
④이것의 정상작동(correctness) 여부를 검증해 내는 능력
첫 번째가 제대로 훈련되지 못한 사람은 알고리즘 목록의 스테레오 타입에만 길들여져 있어서 모든 문제를 자신이 아는 알고리즘 목록에 끼워 맞추려고 합니다. 디자인패턴을 잘못 공부한 사람과 비슷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마치 과거에 수학 정석만 수십 번 공부해 문제를 하나 던져주기만 하면, 생각해보지도 않고 자신이 풀었던 문제들의 패턴 중 가장 비슷한 것 하나를 기계적·무의식적으로 풀어제끼는 문제풀이기계와 비슷합니다. 그들에게 도중에 물어보십시오. "너 지금 무슨 문제 풀고 있는 거니?" 열심히 연습장에 뭔가 풀어나가고는 있지만 그들은 자신이 뭘 풀고 있는지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머리가 푸는 게 아니고 손이 푸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도구에 종속되는 '망치의 오류'에 빠지기 쉽습니다. 새로운 알고리즘을 고안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기존 알고리즘에 계속 매달릴 뿐입니다. 알고리즘을 새로 고안해 내건 혹은 기존의 것을 조합하건 스스로 생각해 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가 제대로 훈련되지 못한 사람은 일일이 구현해 보고 실험해 봐야만 알고리즘 간의 효율을 비교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자신이 가진 카탈로그를 벗어난 알고리즘을 만나면 이 문제가 생깁니다. 이건 상당한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세 번째가 제대로 훈련되지 못한 사람은, 문제를 보면 "아, 이건 이렇게 저렇게 해결하면 됩니다"하는 말은 곧잘 할 수 있지만 막상 컴퓨터 앞에 앉혀 놓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자신이 생각해낸 그 구체적 알고리즘을 남에게 설명해 줄 수는 있지만, 그걸 '컴퓨터에게' 설명하는 데는 실패합니다. 뭔가 생각해낼 수 있다는 것과 그걸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네 번째가 제대로 훈련되지 못한 사람은, 알고리즘을 특정 언어로 구현해도, 그것이 옳다는 확신을 할 수 없습니다. 임시변통(ad hoc)의 아슬아슬한 코드가 되거나 이것저것 덧붙인 누더기 코드가 되기 쉽습니다. 이걸 피하려면 두 가지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수학적·논리학적 증명의 훈련이고, 다른 하나는 테스트 훈련입니다. 전자가 이론적이라면 후자는 실용적인 면이 강합니다. 양자는 상보적인 관계입니다. 특수한 경우들을 개별적으로 테스트해서는 검증해야 할 것이 너무 많고, 또 모든 경우에 대해 확신할 수 없습니다. 테스트가 버그의 부재를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수학적 증명을 통하면 그것이 가능합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수학적 증명을 굳이 할 필요 없이 단순히 테스트 케이스 몇 개만으로도 충분히 안정성이 보장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그냥 테스트만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를 함께 다루라
자료구조와 알고리즘 공부를 할 때에는 가능하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실세계의 문제를 함께 다루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모든 학습에 있어 이는 똑같이 적용됩니다. 인류의 지성사를 봐도, 구상(concrete) 다음에 추상(abstract)이 옵니다. 인간 개체 하나의 성장을 봐도 그러합니다. 'be-동사 더하기 to-부정사'가 예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룰만 외우는 것보다 다양한 예문을 실제 문맥 속에서 여러 번 보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은 자명합니다. 알고리즘과 자료구조를 공부할 때 여러 친구들과 함께 연습문제(특히 우리가 경험하는 실세계의 대상들과 관련이 있는 것)를 풀어보기도 하고, ACM의 ICPC(International Collegiate Programming Contest: 세계 대학생 프로그래밍 경진 대회) 등의 프로그래밍 경진 대회 문제 중 해당 알고리즘·자료구조가 사용될 수 있는 문제를 같이 풀어보는 것도 아주 좋습니다. 이게 가능하려면 "이 알고리즘이 쓰이는 문제는 이거다"하고 가이드를 해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죠. 이것은 그 구체적 알고리즘·자료구조를 훈련하는 것이고, 이와 동시에 어떤 알고리즘을 써야할지 선택, 조합하는 것과 새로운 알고리즘을 만들어내는 훈련도 무척 중요합니다.
알고리즘 디자인 과정의 중요성
알고리즘을 좀더 수월하게, 또 잘 만들려면 알고리즘 디자인 과정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냥 밑도 끝도 없이 문제를 쳐다본다고 해서 알고리즘이 튀어나오진 않습니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접근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다익스트라(E. W. Dijkstra)와 워스(N. Wirth)의 '조금씩 개선하기'(Stepwise Refinement)가 있습니다. 워스의 「Program Development by Stepwise Refinement」(1971, CACM 14.4,http://www.acm.org/classics/dec95)를꼭 읽어보길 바랍니다. 여기 소개된 조금씩 개선하기는 구조적 프로그래밍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습니다(구조적 프로그래밍을 'goto 문 제거' 정도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다익스트라의 「Stepwise Program Construction」(Selected Writings on Computing: A Personal Perspective, Springer-Verlag, 1982,http://www.cs.utexas.edu/users/EWD/ewd02xx/EWD227.PDF)도추천합니다.
알고리즘 검증은 알고리즘 디자인과 함께 갑니다. 새로운 알고리즘을 고안할 때 검증해 가면서 디자인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장 큰 역할은 고안이 끝났을 때의 검증입니다. 알고리즘 검증에는 루프 불변식(loop invariant) 같은 것이 아주 유용합니다. 아주 막강한 무기입니다. 익혀 두면 두고두고 가치를 발휘할 것입니다. 맨버(Udi Manber)의 알고리즘 서적(『Introduction to Algorithms: A Creative Approach』)이 알고리즘 검증과 디자인이 함께 진행해 가는 예로 자주 추천됩니다. 많은 계발을 얻을 것입니다. 고전으로는 다익스트라의 『A Discipline of Programming』과 그라이스(Gries)의 『The Science of Programming』이 있습니다. 특히 전자를 추천합니다. 프로그래밍에 대한 관을 뒤흔들어 놓을 것입니다.
알고리즘과 패러다임
알고리즘을 공부하면 큰 줄기들을 알아야 합니다. 개별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패러다임'이라고 할만한 것들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튜링상을 수상한 로버트 플로이드(Robert Floyd)의 튜링상 수상 강연(The Paradigms of Programming, 1978)을 추천합니다. 패러다임을 알아야 알고리즘을 상황에 맞게 마음대로 변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분류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구체적인 문제들을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여럿 접하는 동안 그냥 지나쳐 버리면 개별자는 영원히 개별자로 남을 뿐입니다. 비슷한 문제들을 서로 묶어서 일반화해야 합니다.
이런 패러다임을 발견하려면 '다시 하기'가 아주 좋습니다.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이 다시 하기는 알고리즘에서만이 아니고 모든 공부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같은 것을 다시 해보는 것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까요. 대단히 많습니다. 왜 동일한 문제를 여러 번 풀고, 왜 같은 내용의 세미나에 또 다시 참석하고, 같은 프로그램을 거듭 작성할까요? 훨씬 더 많이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화술 교육에서는 같은 주제에 대해 한 번 말해본 연사와 두 번 말해본 연사는 천지 차이가 있다고 말합니다. 같은 일에 대해 두 번의 기회가 주어지면 두 번째에는 첫 번째보다 잘 할 기회가 있습니다. 게다가 첫 번째 경험했던 것을 '터널을 벗어나서' 다소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왜 자신이 저번에 이걸 잘 못 했고, 저걸 잘 했는지 알게 되고, 어떻게 하면 그걸 더 잘할 수 있을는지 깨닫게 됩니다. 저는 똑같은 문제를 여러 번 풀더라도 매번 조금씩 다른 해답을 얻습니다. 그러면서 정말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배웁니다. '비슷한 문제'를 모두 풀 능력이 생깁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전산학자 로버트 플로이드(Robert W. Floyd)는 1978년도 튜링상 강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제가 어려운 알고리즘을 디자인하는 경험을 생각해 볼 때, 제 능력을 넓히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특정한 테크닉이 있습니다. 어려운 문제를 푼 후에, 저는 그것을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 풉니다. 좀 전에 얻은 해법의 통찰(insight)만을 유지하면서 말이죠. 해법이 제가 희망하는 만큼 명료하고 직접적인 것이 될 때까지 반복합니다. 그런 다음, 비슷한 문제들을 공략할 어떤 일반적인 룰을 찾습니다. 아까 주어진 문제를 아예 처음부터 최고로 효율적인 방향에서 접근하도록 이끌어줬을 그런 룰을 찾는 거죠. 많은 경우에 그런 룰은 불변의 가치가 있습니다. … 포트란의 룰은 몇 시간 내에 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관련 패러다임은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배우거나(learn) 배운 것을 잊거나(unlearn) 하는 데 모두.
수학자와 프로그래머를 포함한 모든 문제 해결자들의 고전이 된 죠지 폴리야(George Polya)의 『How to Solve it』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꽤나 훌륭한 학생들도, 문제의 해법을 얻고 논증을 깨끗하게 적은 다음에는 책을 덮어버리고 뭔가 다른 것을 찾는다. 그렇게 하는 동안 그들은 그 노력의 중요하고도 교육적인 측면을 잃어버리게 된다. … 훌륭한 선생은 어떠한 문제이건 간에 완전히 바닥이 드러나는 경우는 없다는 관점을 스스로 이해하고 또 학생들에게 명심시켜야 한다.
저는 ACM의 ICPC 문제 중에 어떤 문제를 이제까지 열 번도 넘게 풀었습니다. 대부분 짝 프로그래밍이나 세미나를 통해 프로그래밍 시연을 했던 것인데, 제 세미나에 여러 번 참석한 분이 농담조로 웃으며 물었습니다. "신기해요. 창준 씨는 그 문제를 풀 때마다 다른 프로그램을 짜는 것 같아요. 설마 준비를 안 해 와서 그냥 내키는 대로 하는 건 아니죠?" 저는 카오스 시스템과 비슷하게 초기치 민감도가 프로그래밍에도 작용하는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저 스스로 다른 해법을 시도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출발이 조금 다르고, 또 거기서 나오는 진행 방향도 다르게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같은 문제를 매번 다르게 풀면서 배우는 것이 엄청나게 많다는 점입니다. 저는 매번, 전보다 개선할 것을 찾아내게 되고, 또 새로운 것을 배웁니다. 마치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계속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점이 참 놀랍습니다.
알고리즘 개론 교재로는 CLR(Introduction to Algorithms, Thomas H. Cormen, Charles E. Leiserson, and Ronald L. Rivest)을 추천합니다. 이와 함께 혹은 이 책을 읽기 전에 존 벤틀리(Jon Bentley)의 『Programming Pearls』도 강력 추천합니다. 세계적인 짱짱한 프로그래머와 전산학자들이 함께 꼽은 위대한 책 목록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책입니다. 아직 이 책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축하합니다. 아마 몇 주간은 감동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게 될 겁니다.
제가 생각건대, 교육적인 목적에서는 자료구조나 알고리즘을 처음 공부할 때 우선은 특정 언어로 구현된 것을 보지 않는 것이 좋을 때가 많습니다. 대신 말로 된 설명이나 의사코드(pseudo-code) 등으로 그 개념까지만 이해하는 것이죠. 그 아이디어를 절차형(C, 어셈블리어)이나 함수형(LISP, Scheme, Haskell), 객체지향(자바, 스몰토크) 언어 등으로 직접 구현해 보는 겁니다. 그 다음에는 다른 사람이나 다른 책의 코드와 비교합니다. 이 경험을 애초에 박탈당한 사람은 귀중한 배움과 깨달음의 기회를 잃은 셈입니다.
만약 여러 사람이 함께 공부한다면 각자 동일한 아이디어를 같은 언어로 혹은 다른 언어로 어떻게 다르게 표현했는지를 서로 비교해 보면 배우는 것이 무척 많습니다.
우리가 자료구조나 알고리즘을 공부하는 이유는, 특정 '실세계의 문제'를 어떠한 '수학적 아이디어'로 매핑시켜 해결할 수 있는지, 그것이 효율적인지, 또 이를 컴퓨터에 어떻게 효율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지 따지고, 그것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이 과정에 있어 실세계의 문제를 수학 문제로, 그리고 수학적 개념을 프로그래밍 언어로 효율적으로 표현해내는 것은 아주 중요한 능력이 됩니다.
알고리즘 공부에서 중요한 것
개별 알고리즘의 목록을 이해, 암기하며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다음 네 가지입니다.
①알고리즘을 스스로 생각해낼 수 있는 능력
②다른 알고리즘과 효율을 비교할 수 있는 능력
③알고리즘을 컴퓨터와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해낼 수 있는 능력
④이것의 정상작동(correctness) 여부를 검증해 내는 능력
첫 번째가 제대로 훈련되지 못한 사람은 알고리즘 목록의 스테레오 타입에만 길들여져 있어서 모든 문제를 자신이 아는 알고리즘 목록에 끼워 맞추려고 합니다. 디자인패턴을 잘못 공부한 사람과 비슷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마치 과거에 수학 정석만 수십 번 공부해 문제를 하나 던져주기만 하면, 생각해보지도 않고 자신이 풀었던 문제들의 패턴 중 가장 비슷한 것 하나를 기계적·무의식적으로 풀어제끼는 문제풀이기계와 비슷합니다. 그들에게 도중에 물어보십시오. "너 지금 무슨 문제 풀고 있는 거니?" 열심히 연습장에 뭔가 풀어나가고는 있지만 그들은 자신이 뭘 풀고 있는지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머리가 푸는 게 아니고 손이 푸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도구에 종속되는 '망치의 오류'에 빠지기 쉽습니다. 새로운 알고리즘을 고안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기존 알고리즘에 계속 매달릴 뿐입니다. 알고리즘을 새로 고안해 내건 혹은 기존의 것을 조합하건 스스로 생각해 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가 제대로 훈련되지 못한 사람은 일일이 구현해 보고 실험해 봐야만 알고리즘 간의 효율을 비교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자신이 가진 카탈로그를 벗어난 알고리즘을 만나면 이 문제가 생깁니다. 이건 상당한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세 번째가 제대로 훈련되지 못한 사람은, 문제를 보면 "아, 이건 이렇게 저렇게 해결하면 됩니다"하는 말은 곧잘 할 수 있지만 막상 컴퓨터 앞에 앉혀 놓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자신이 생각해낸 그 구체적 알고리즘을 남에게 설명해 줄 수는 있지만, 그걸 '컴퓨터에게' 설명하는 데는 실패합니다. 뭔가 생각해낼 수 있다는 것과 그걸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네 번째가 제대로 훈련되지 못한 사람은, 알고리즘을 특정 언어로 구현해도, 그것이 옳다는 확신을 할 수 없습니다. 임시변통(ad hoc)의 아슬아슬한 코드가 되거나 이것저것 덧붙인 누더기 코드가 되기 쉽습니다. 이걸 피하려면 두 가지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수학적·논리학적 증명의 훈련이고, 다른 하나는 테스트 훈련입니다. 전자가 이론적이라면 후자는 실용적인 면이 강합니다. 양자는 상보적인 관계입니다. 특수한 경우들을 개별적으로 테스트해서는 검증해야 할 것이 너무 많고, 또 모든 경우에 대해 확신할 수 없습니다. 테스트가 버그의 부재를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수학적 증명을 통하면 그것이 가능합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수학적 증명을 굳이 할 필요 없이 단순히 테스트 케이스 몇 개만으로도 충분히 안정성이 보장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그냥 테스트만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를 함께 다루라
자료구조와 알고리즘 공부를 할 때에는 가능하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실세계의 문제를 함께 다루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모든 학습에 있어 이는 똑같이 적용됩니다. 인류의 지성사를 봐도, 구상(concrete) 다음에 추상(abstract)이 옵니다. 인간 개체 하나의 성장을 봐도 그러합니다. 'be-동사 더하기 to-부정사'가 예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룰만 외우는 것보다 다양한 예문을 실제 문맥 속에서 여러 번 보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은 자명합니다. 알고리즘과 자료구조를 공부할 때 여러 친구들과 함께 연습문제(특히 우리가 경험하는 실세계의 대상들과 관련이 있는 것)를 풀어보기도 하고, ACM의 ICPC(International Collegiate Programming Contest: 세계 대학생 프로그래밍 경진 대회) 등의 프로그래밍 경진 대회 문제 중 해당 알고리즘·자료구조가 사용될 수 있는 문제를 같이 풀어보는 것도 아주 좋습니다. 이게 가능하려면 "이 알고리즘이 쓰이는 문제는 이거다"하고 가이드를 해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죠. 이것은 그 구체적 알고리즘·자료구조를 훈련하는 것이고, 이와 동시에 어떤 알고리즘을 써야할지 선택, 조합하는 것과 새로운 알고리즘을 만들어내는 훈련도 무척 중요합니다.
알고리즘 디자인 과정의 중요성
알고리즘을 좀더 수월하게, 또 잘 만들려면 알고리즘 디자인 과정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냥 밑도 끝도 없이 문제를 쳐다본다고 해서 알고리즘이 튀어나오진 않습니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접근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다익스트라(E. W. Dijkstra)와 워스(N. Wirth)의 '조금씩 개선하기'(Stepwise Refinement)가 있습니다. 워스의 「Program Development by Stepwise Refinement」(1971, CACM 14.4,http://www.acm.org/classics/dec95)를꼭 읽어보길 바랍니다. 여기 소개된 조금씩 개선하기는 구조적 프로그래밍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습니다(구조적 프로그래밍을 'goto 문 제거' 정도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다익스트라의 「Stepwise Program Construction」(Selected Writings on Computing: A Personal Perspective, Springer-Verlag, 1982,http://www.cs.utexas.edu/users/EWD/ewd02xx/EWD227.PDF)도추천합니다.
알고리즘 검증은 알고리즘 디자인과 함께 갑니다. 새로운 알고리즘을 고안할 때 검증해 가면서 디자인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장 큰 역할은 고안이 끝났을 때의 검증입니다. 알고리즘 검증에는 루프 불변식(loop invariant) 같은 것이 아주 유용합니다. 아주 막강한 무기입니다. 익혀 두면 두고두고 가치를 발휘할 것입니다. 맨버(Udi Manber)의 알고리즘 서적(『Introduction to Algorithms: A Creative Approach』)이 알고리즘 검증과 디자인이 함께 진행해 가는 예로 자주 추천됩니다. 많은 계발을 얻을 것입니다. 고전으로는 다익스트라의 『A Discipline of Programming』과 그라이스(Gries)의 『The Science of Programming』이 있습니다. 특히 전자를 추천합니다. 프로그래밍에 대한 관을 뒤흔들어 놓을 것입니다.
알고리즘과 패러다임
알고리즘을 공부하면 큰 줄기들을 알아야 합니다. 개별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패러다임'이라고 할만한 것들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튜링상을 수상한 로버트 플로이드(Robert Floyd)의 튜링상 수상 강연(The Paradigms of Programming, 1978)을 추천합니다. 패러다임을 알아야 알고리즘을 상황에 맞게 마음대로 변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분류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구체적인 문제들을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여럿 접하는 동안 그냥 지나쳐 버리면 개별자는 영원히 개별자로 남을 뿐입니다. 비슷한 문제들을 서로 묶어서 일반화해야 합니다.
이런 패러다임을 발견하려면 '다시 하기'가 아주 좋습니다.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이 다시 하기는 알고리즘에서만이 아니고 모든 공부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같은 것을 다시 해보는 것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까요. 대단히 많습니다. 왜 동일한 문제를 여러 번 풀고, 왜 같은 내용의 세미나에 또 다시 참석하고, 같은 프로그램을 거듭 작성할까요? 훨씬 더 많이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화술 교육에서는 같은 주제에 대해 한 번 말해본 연사와 두 번 말해본 연사는 천지 차이가 있다고 말합니다. 같은 일에 대해 두 번의 기회가 주어지면 두 번째에는 첫 번째보다 잘 할 기회가 있습니다. 게다가 첫 번째 경험했던 것을 '터널을 벗어나서' 다소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왜 자신이 저번에 이걸 잘 못 했고, 저걸 잘 했는지 알게 되고, 어떻게 하면 그걸 더 잘할 수 있을는지 깨닫게 됩니다. 저는 똑같은 문제를 여러 번 풀더라도 매번 조금씩 다른 해답을 얻습니다. 그러면서 정말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배웁니다. '비슷한 문제'를 모두 풀 능력이 생깁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전산학자 로버트 플로이드(Robert W. Floyd)는 1978년도 튜링상 강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제가 어려운 알고리즘을 디자인하는 경험을 생각해 볼 때, 제 능력을 넓히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특정한 테크닉이 있습니다. 어려운 문제를 푼 후에, 저는 그것을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 풉니다. 좀 전에 얻은 해법의 통찰(insight)만을 유지하면서 말이죠. 해법이 제가 희망하는 만큼 명료하고 직접적인 것이 될 때까지 반복합니다. 그런 다음, 비슷한 문제들을 공략할 어떤 일반적인 룰을 찾습니다. 아까 주어진 문제를 아예 처음부터 최고로 효율적인 방향에서 접근하도록 이끌어줬을 그런 룰을 찾는 거죠. 많은 경우에 그런 룰은 불변의 가치가 있습니다. … 포트란의 룰은 몇 시간 내에 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관련 패러다임은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배우거나(learn) 배운 것을 잊거나(unlearn) 하는 데 모두.
수학자와 프로그래머를 포함한 모든 문제 해결자들의 고전이 된 죠지 폴리야(George Polya)의 『How to Solve it』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꽤나 훌륭한 학생들도, 문제의 해법을 얻고 논증을 깨끗하게 적은 다음에는 책을 덮어버리고 뭔가 다른 것을 찾는다. 그렇게 하는 동안 그들은 그 노력의 중요하고도 교육적인 측면을 잃어버리게 된다. … 훌륭한 선생은 어떠한 문제이건 간에 완전히 바닥이 드러나는 경우는 없다는 관점을 스스로 이해하고 또 학생들에게 명심시켜야 한다.
저는 ACM의 ICPC 문제 중에 어떤 문제를 이제까지 열 번도 넘게 풀었습니다. 대부분 짝 프로그래밍이나 세미나를 통해 프로그래밍 시연을 했던 것인데, 제 세미나에 여러 번 참석한 분이 농담조로 웃으며 물었습니다. "신기해요. 창준 씨는 그 문제를 풀 때마다 다른 프로그램을 짜는 것 같아요. 설마 준비를 안 해 와서 그냥 내키는 대로 하는 건 아니죠?" 저는 카오스 시스템과 비슷하게 초기치 민감도가 프로그래밍에도 작용하는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저 스스로 다른 해법을 시도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출발이 조금 다르고, 또 거기서 나오는 진행 방향도 다르게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같은 문제를 매번 다르게 풀면서 배우는 것이 엄청나게 많다는 점입니다. 저는 매번, 전보다 개선할 것을 찾아내게 되고, 또 새로운 것을 배웁니다. 마치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계속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점이 참 놀랍습니다.
알고리즘 개론 교재로는 CLR(Introduction to Algorithms, Thomas H. Cormen, Charles E. Leiserson, and Ronald L. Rivest)을 추천합니다. 이와 함께 혹은 이 책을 읽기 전에 존 벤틀리(Jon Bentley)의 『Programming Pearls』도 강력 추천합니다. 세계적인 짱짱한 프로그래머와 전산학자들이 함께 꼽은 위대한 책 목록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책입니다. 아직 이 책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축하합니다. 아마 몇 주간은 감동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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